위대한 몬느 Le Grand Meaulnes
최근 '요절' '한 권의 책으로 소설사에 영원히 기억된'... 따위의 휘황찬란한 수식어들에 꽂혀서 관련 소설들을 읽고 있다.
그 중에 하나가 알랭 푸르니에의 위대한 몬느인데, 꽤 몰입해서 읽었으나 번득이는 천재성보다는 전체적으로 무척 고전적인 느낌이었다. 원래 내가 환상과 현실 그 사이에 있는... 이딴 소재나 고전적인 문체 역시 좋아하기에 나에게는 좋은 책이었다.
초반부는 좀 지루하다. 중반부는 흡입력이 있다. 후반부는 쓸쓸하다.
내가 느낀 이 책의 진정한 묘미는 결국 위대한 몬느따위는 없다는 사실에서 오는 씁쓸한 뒷맛이었다. 모든 꿈과 모험과 희망과 사랑은 아이들 장난이었고, 몬느는 충동적이고 치기어린 서투른 멀대일 뿐이고, 이본느는 별로 인간으로 느껴지지도 않는 클리셰와 상징으로 떡칠한 종이 공주일 뿐이고, 프란츠는 나이가 들어서도 철들지 못하는 우스꽝스러운 광대일 뿐이다.
그 어떤 진정한 모험도 없었고 앞으로도 없다. 그래도 이 모든 놀음에 의미와 일종의 시정을 부여한 것은 결국 쇠렐의 시선이었다고 생각한다. 위대함을 동경하는 병약한 소년의 동경. 그러나 진정으로 용기를 내야 할 순간이 도래할 때마다 도망치기만 한 것은 몬느이고, 꿋꿋이 남아서 모두를 떠올렸던 것은 쇠렐이다. 뭐 그렇다고 해서 결국 진정 위대한 것은 쇠렐이었다니 하는 진부한 소리를 지껄이고 싶은 것은 아니고, 매혹과 환멸 사이를 넘나드는, 딱 그 정도의 적당한 환상성과 현실성의 균형이 이 작품의 묘미라고 생각한다.
뭔가 이건 원서를 읽어봐야 정당하게 평가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민음사) p.279
그는 먼지와 흙으로 뒤덮인 얼굴에, 더러운 눈물자국으로 얼룩진, 녹초가 된 애늙은이 같은 소년의 얼굴을 나한테 보였다. 그의 눈가에는 주근깨가 끼었다. (...) 그는 더이상 옛날의 누더기를 걸친 왕자가 아니었다. 심정적으로 틀림없이 옛날보다 더 어린아이일 터였다. 가난하고 몽상적인데다가 절망에 빠진 어린아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 어린애다움이 이미 늙어버린 그 소년에게는 견딜 수 없는 지독한 고통이었다...
*짧게나마 나에게 전율을 주었던 장면 중 일부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