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계발은 거짓부렁이다

불타는 평원 El Llano en llamas

토마스만 2018. 1. 28. 20:46

[잘 쓴 글]이라는 칭호보다 주관적이고 허망한 단어도 별로 없다. 무엇이 걸작이고, 무엇이 고전인가? 나의 걸작에 대한 기준은 서로 다른 재능을 맞닥뜨릴 때마다 줏대도 없이 바뀌어버린다. 어느 날은 괴테를 읽고 이보다 아름다울 수 없다고 생각한다. 어느 날은 밀란 쿤데라를 읽고 이런 것이 진정한 재치이자 사색이라 생각한다. 또 어떤 날은, 후안 룰포의 작품을 읽고 그 모든 잣대를 잃어버리고 만다.

현학적인 잣대도, 은은히 깃들어 있는 허영심도 녹아 없어진다. 이제 내 앞에 놓인 것은 벌거벗은 인간, 피와 살의 냄새, 원초적이고 단순하지만 그 깊이를 알 수 없는 욕망들 뿐이다. 서사를 느낄 겨를도 없이 짧은 이야기들은 아쉬움을 남기고 끝나버린다. 아쉬움을 남길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대단한 재능인가. 그러나 동시에, 나는 이야기가 계속되기를 바라지는 않는다. 일어나야 할 일은 일어났고, 해야할 말들은 쓰여 있다. 남은 것은 온전한 여운일 뿐이다.

나는 너무나도 많은 개념이 사람을 짓누르는 시대에 살고 있다. 너무 많은 개념들로 뿌옇게 흐려져서 이제는 본질을 파악할 수도 없는 사어들을 수치심도 없이 내뱉고 있다. 그리고 어느 날, 이토록 정결한, 밤하늘을 찢고 나온 달처럼 잔인할정도로 서늘한 글을 만나게 되고, 부끄러운 동시에 불안해진다. 외로워진다. 그리고 나는 경험해 본 적도 없는 일들에 대한 짙은 향수를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