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기력증 극복을 위한 토요일의 글
+ 1년 전 어느 토요일 쓰다 만 이 글을 우연히 발견했다. 이로써 아무래도 역시 귀차니즘은 극복할 수 없다는 것이 실례로 증명된 것 같다는 절망스러운 결론부터 띄우면서, 그래도 아까우니까 이 자가당착의 글을 그 누구도 원하지 않았던 세상에 끼얹어본다.
생각해보면 사실 나는 꽤나 열심히, 그리고 잘 살아온 편이라고 자부 또는 착각하지만, 휴일을 습격하는 게으름과 무기력, 그리고 그로 인해 빠져들게 되는 무용한 죄책감의 늪은 정말 어쩔 수가 없다.
이 글은 철저히 나를 위한 것이다.
다만 인터넷 세상에 공개하여 이 디지털 쪼가리가 부유하는 먼지처럼 그 넓이(혹은 깊이?)를 짐작할 수 없는 공간 또는 시간에 떠돌게 만드는 것은, 몇 남지 않은 현대인의 형편없는 낭만이다.
사실 게으름은 굳이 '극복'하지 않아도 된다고 본다. 달콤하고 편안하기만 하다면 거창하게 쾌락주의까지 가지 않더라도 그것은 또 하나의 양질의 취미활동이 될 것이다. 그러나 보통의 게으름은 사실상 강제된 무기력이며, 우리의 해피타임을 갉아먹는 끔찍한 죄책감을 수반한다. 만약 게으름을 생산적인 활동의 반대로 본다면, 이 글은 더욱더 게으름을 극복하기 위함이 아니다. 휴일이라는 것이 애초에 쉬라고 휴일인 만큼, 죄책감을 느끼지 않으면서 깔쌈한 게으름을 부리자는 것이다.
1. 우선, 씻어라.
내가 깨끗해야 뭐라도 제대로 한다. 외출을 하려고 해도 당연한 선행 단계이며, 그 반대는 그냥 누워버리고 몇 시간을 더 자버릴 매우 손쉬운 핑계로 작용할 수 있고, 사실 깨끗하게 씻고 낮잠을 퍼질러 자더라도 훨씬 양질의 잠을 잘 수 있다. 또한 씻는 행위 자체는 붕 떠 있는 시간의 간극을 채울 수 있는 매우 좋은 활동이다. 월화수목금퇼의 전설처럼 휴일은 미친듯이 짧은 것 같지만, 사실 그 시간 하나하나에는 이 시간을 어떻게 할지를 몰라 어영부영하는 내 자신의 조각들이 담겨있다. 시간은 지나고 있고, 나는 어찌해야 할 지 모르고, 졸리지도 않은데 괜히 누워 있고 싶다가 몇 시간 후 죄책감과 두통, 갑자기 어두워진 창밖에 대한 덧없는 불안을 느끼며 일어날 것이 뻔할 때는 그냥 일어나서 씻자. 씻으면서 그 어쩔 수 없었던 시간을 강제로 보내고, 생각을 정리하고, 노래도 부르고, 따뜻한 물과 좋아하는 향을 맡으며 시간을 보내자. 씻고 수건을 두르고, 가운도 입고, 커피도 끓여보자. 그리고 깨끗하고 뽀송한 자신에 대한 쓸데없는 만족감을 마음껏 느껴보자.
2. 청소해라
1번과 맥락을 같이 하지만, 조금 더 챌린징하다. 청소하는 게 싫은 사람이면 굳이 안해도 된다. 하지만 명심할 것은, 어질러진 것과 먼지구덩이는 다르다는 점이다. 나는 무질서속의 질서를 옹호하는 나와 동류의 모든 사람들을 응원한다 - 그렇지만 실제로 까본 그들의 방이 무질서가 아닌 비위생의 표상이었다면 괜스레 뒤통수가 얼얼할 것이 틀림없다. 우유부단한 사람들을 위해 정해주겠다. (확고한 사람들은 뭐.. 알아서 잘 사실테고) 책이고 가방이고 옷가지고, 아무데나 있어도 괜찮음을 선포한다. 밤과 낮의 침대와 의자 위의 물품 맞교환도 허용한다. 그러나 바닥에 먼지, 머리카락, 그 외 불쾌감을 줄 수 있는 비스무리한 것들은 전혀 없어야 한다. 잘 느껴지지도 않는 건강 문제까지 나아가지 않더라도, 그 누구도 그 언젠가 자신의 과오로 인해 인류 최대의 적수인 바선생을(지금 이 단어를 쓰는것 만으로도 이름을 말할 수 없는 무시무시한 자를 부를때처럼 오금저리고 얼어붙어 Cold heart baby) 만나지 않기를 바라는 나의 최소한의 인류애가 이렇게 말했다..
여튼, 청소하자. 창문도 열어 젖히고, 작은 블루투스 스피커가 하나 있으면 좋다. 좋아하는 노래를 틀어놓고 꼴사납게 춤추며 청소하자. 버릴 건 버리고, 챙길 건 챙기자. 사실 눈에 성과가 보이는 단순노동은 더 고차원적이라고 여겨지는 정신노동보다 인간에게 훨씬 큰 만족감과 성취감을 준다.
3. 기록해라
글을 쓰는 것을 싫어하는 사람에게 억지로 글을 쓰라는 것이 아니다. 다만 생각해 보자면, 한 사람의 인생에서 특별한 감정, 특별한 경험들은 매우 한정되어 있다. 그리고 그 외의 무수한 남은 기간동안, 사람은 그 제한된 기억의 잔상을 먹고 살아가는 것도 같다. 기록은 이러한 활동을 훨씬 손쉽고 다채롭게 해주고, 가끔은 그 순간에 없던 의미까지 만들어서 부여해 주니 전혀 손해보는 장사라고 할 수 없다. 새벽의 차가운 공기 속에서 차분하게 떠올랐던 혹은 가라앉았던 감정들, 오후의 나른함 속에서 잠시 품어봤던 너그러움과 선의, 부끄럽고 어리석은 생각들, 정리되지 않는 생각들, 결코 지켜지지 않을 헛된 다짐들을 대충 휘갈겨 보자. 나중에 보면, 정말 매일 똑같은 생각의 쳇바퀴를 돌고 있음에 놀랄 것이고, 그럼에도 그 기록들이 상당히 재미있다는 사실에 놀랄 것이다. 왜냐면 그것이 결국 나라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나의 취향들, 생각들, 모자람과 치부까지. 어렴풋이 인식하고 있는 것과 글으로 기록되고 정리된 나 자신을 마주하는 것은 확연히 다르며, 덤으로 가끔씩 내가 썼다고 믿을 수 없는 번득이는 구절 몇개까지 건질 수 있다. 딱히 샘솟는 창작의 의지와 기지 또는 천재성이 없는 나같은 사람으로서는 그 정도만으로도 꽤나 만족스럽다. 우리는 결국 잠시나마 반짝였던 순간들, 그 잔상과 변주들로 살아가며, 그 과정 속에서 현상들에 대해 사고하는 방식을 확립하고, 좋은 방향이든 나쁜 방향이든 (누가 감히 평가할 수 있겠는가?) 그렇게 단단해져가는 것이다. 이 과정에는 분명히 어떤 미학이 있다고 생각하며, 그것을 기록하는 것은 어떤 방향으로든 유의미하게 작용할 것이다.
4. 좋아하는 공간을 만들라
뭐 간단하게 말해보자면 "방꾸"(이런 단어가 있나..? 별다줄..)라고 할 수 있겠다. 자신의 취향으로 가득 찬 공간을 만들자. 흔히 인식되는 바와 달리 이러한 활동은 예쁜 방이라는 결과물을 위해서라기보다는 이를 위해 고심하고, 소비하고, 발로 뛰는 과정 그 자체를 위한 것이고, 결과물은 그저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것이다. 좋아하는 공간을 만든다는 것은, 결국 내가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에서 시작한다. 간단히 좋아하는 색부터 시작해서 좋아하는 락밴드나 영화의 포스터, 내 취향의 디자인과 물건의 재질, 좋아하는 향기, 여행에서 가져온 기념품과 엽서들... 내가 사랑하는 것들, 혹은 사랑하게 될 것들로 공간을 채워가는 동안, 물건들에 깃든 지금까지의 추억들과 그로 인해 빚어져 온 나라는 존재를 실컷 느낄 수 있는 것은 덤이다.
관계나 타인은 결국 예고없이 가고 오는 것이고, 사실상 내가 이에 대해 통제할 수 있는 부분은 거의 없으며, 모든 것을 통제하고 싶어하는 순간 마법처럼 강박과 불행이 시작된다. 무언가를 통제하고 질서를 잡아가는 기분을 느끼고 싶다면, 그 대상을 나와 나의 공간으로 한정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사실 특별한 인간, 특별한 인생같은 것은 애초에 존재하지 않을 지도 모르지만, 자신을 특별하다고 착각할 수 있는 한도 내에서는 그 착각을 마음껏 누리는 것이 현명한 일이다. 한나절의 몽상이 결국은 환멸로 깨어질지라도, 적어도 그 순간만큼은 누구보다 특별하고 사랑할 만한 나라는 달콤한 도취에 빠질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 보자, 이러한 원대한 포부의 숙원사업을 가져 보는 것이다.
5. 시작과 끝이 있는, 확연한 '진도'가 있는 활동을 해라
사실 가장 바람직한 활동은 책 한 권 / 한 챕터 끝내기, 영화 한 편 보기 등이고 (그래도 주말이므로 더더욱 생산적인 활동은 금기로 언급하지 않겠다. 그러나 스아실 진도가 정해져 있는 약간의 공부는 점점 우민화 되어가는 좀비직장인의 뇌를 상쾌하게 깨워줄 수 있다는 *진짜레얼실화임; 매우 너드적 코멘트를 덧붙인다...) 게임은 별로 좋지 않다. 보통 게임은 컨텐츠 소비+1 지식 스탯 +1 이런 식이라기보다는 무한으로 즐기기 위한 (명륜진사갈비) 매커니즘으로 작동하고, 존나세가 되기 위하여 아무리 발광하고 하루를 모두 써도 도무지 뿌-듯한 기분이 잘 들지 않기 때문이고 눈의 피로만 따라오기 때문이다. 하지만 게임은 존잼이고 이 부분은 나도 잘 지키고 있지 않기 때문에 짧게 줄이기로 한다..
뭔가 시간이 붕 뜨는 느낌이 든다면 진도가 있는 활동을 하나 정해서 끝내고 그게 무엇이든 뿌듯함을 좀 느껴보는 게 좋다.
6. 무엇보다, 죄책감을 느끼지 말자.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삶을 살면서 내게 점점 명료해지고 확고해져 가는것은, 결코 시간은 끔찍하게 낭비될 수 없다는 점이다. 인간은 언제나 원하는대로 인생을 이끌어 갈 수 없고, 그 모든 시간들을 자신이 원하는 활동들로 완벽히 계획된대로 끌어갈 수 없다. 단순히 불가능한 것을 뛰어넘어서, 만약 그것이 가능하다면 인생이란 대체 무엇이며 우리는 어디서 인생의 재미와 의미를 찾아야 하는가? 인생은 결국 주어진 시간들을 어떻게든 되는대로 삼켜내려고 하는 한 인간의 발버둥의 집합체라고 생각한다. 방향을 정하는 것은 개인의 자유고 그것에서 분명한 성취감을 느낄 수는 있겠지만, 결국 그것이 우리를 어디로 이끌 것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래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그냥 이 순간을 원하는 대로 살아내고, 더 이상 손댈 수 없는 지나간 순간들은 굳이 후회하지 않으며, 회한이 드는 것을 멈출 수 없다면 적어도 그 감정들 속에서 느낄 수 있는 모든 것을 느끼고 새로운 것들을 길어내자는 것이다. 대체 누가, 어떤 관점에서 하나의 삶이 완전히 망가져 버렸다고, 혹은 이제 걱정할 일 없이 완벽하다고 단언할 수 있겠는가? 아직도 수많은 시간들이 우리의 발 앞에 펼쳐져 있으며, 그 무엇도 영원하지 않으며 원하든 원하지 않든, 계속해서 새로운 시간들은 들이닥칠 것이며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적어도 파도 위에서 패닉하여 물에 빠져버리지 말고, 차분히 균형을 잡고, 원하는 음악을 틀고 이 항해를 즐기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끝.